갑골문 해독사
◈해독에 기여한 인물
청말의 문자학자·국자감 좨주. 1899년 한약방의 "용골"에서 고대 문자를 발견, 그해에만 약 1,500편을 사들였다.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자 발견 1년 만에 자결.
왕의영의 친구이자 소설가(「노잔유기」 저자). 왕의영의 갑골 컬렉션을 물려받아 1903년 「철운장귀(鐵雲藏龜)」 — 1,058편의 갑골 탁본집을 출판. 갑골문이 학문의 영역에 처음 들어선 순간이었다.
1908년 갑골이 골동상에 의해 비밀에 부쳐졌던 출토지를 추적해 하남성 안양 소둔촌(殷, 상나라 마지막 수도)임을 밝혔다. 이로써 학자들이 직접 발굴할 수 있게 되어 1928년부터 중앙연구원의 본격 발굴이 시작됐다.
갑골문을 「사기(史記)」의 상나라 왕 계보와 대조해 두 기록이 완벽히 일치함을 입증. 전설로 여겨지던 상나라의 역사적 실재를 처음 증명했다.
◈어떻게 해독했나?
갑골문은 거북의 배 껍데기 또는 소·사슴의 어깨뼈에 새긴 상나라(BC 1600~1046)의 점복 기록이다. 점복 절차는 4단계: ① 날짜·점술가 이름 → ② 신에게 묻는 내용 → ③ 왕의 균열 해석(판단) → ④ 사후 결과 검증. 왕이 직접 균열을 해석하는 최고 사제였으며, 전쟁·농사·날씨·질병·심지어 왕의 이빨 통증과 꿈까지 국가의 모든 결정이 갑골을 거쳤다. 발견된 글자는 약 5,000자, 해독된 것은 약 1,500자.
◈실제 해독된 문자들
대표적 비문 예: "婦好" — 부호(婦好), 상나라 22대 왕 무정(武丁)의 왕비이자 군대 1만 3천명을 이끈 장군이자 최고 사제. 1976년 안양에서 도굴되지 않은 그녀의 무덤이 발굴되었고, 청동기·옥기 등 1,928점과 갑골에 새겨진 그녀 이름 약 200건이 일치했다.
◈해독의 전후 스토리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까지 학자들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상나라를 신화·전설로 여겼다. 한편 하남성 안양 소둔촌의 농부들은 수십 년 동안 밭에서 캐낸 뼛조각을 "용골(龍骨)"이라 부르며 한약방에 팔고 있었다. 약방에서는 갈아서 지혈제·진통제로 쓰였다. 글자가 새겨진 뼈는 오히려 가격이 낮아 일부러 글자를 갈아 없애기도 했다.
1899년, 학질에 걸린 문자학자 왕의영이 처방받은 약을 끓이려다 약탕기에서 건진 뼛조각에 새겨진 글자를 알아봤다. 매우 오래된 글자였다. 그는 즉시 베이징의 모든 한약방을 돌아 글자가 새겨진 뼈를 사들였다. 그해 모은 것이 약 1,500편. 1903년 친구 유악이 「철운장귀」를 출판하며 갑골문이 학문의 영역에 들어섰고, 1908년 나진옥이 출토지 안양 소둔촌을 밝히면서 본격 발굴이 가능해졌다.
1928년부터 중앙연구원이 본격 발굴을 시작해 현재까지 약 16만 편이 출토됐다. 발견된 글자는 약 5,000자, 해독된 것은 약 1,500자. 갑골에 기록된 상나라 왕들의 이름이 「사기」의 기록과 완벽히 일치하면서, 전설로만 남았던 상나라가 역사로 입증됐다. 현재 중국 갑골문 국제 연구센터는 미해독 갑골문 1자당 10만 위안(약 1,800만 원)의 보상금을 걸고 AI를 포함한 새로운 해독 시도를 독려하고 있다. 갑골문은 현대 한자의 직계 조상이며, 3,2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는 문자 체계의 출발점이다.
